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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a1231 2025. 2. 10.

경희대학교(慶熙大學校, Kyung Hee University)는 1911년에 개교한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의 후신[1]으로 1949년 5월 12일 개교한 대한민국의 4년제 사립 종합대학이다.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는 해방 후 1947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에 신흥무관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한 신흥전문학원(新興專門學院)을 설립하였으며, 1949년에 배영대학관을 합병하여 2년제 신흥초급대학(新興初級大學)으로 설립을 가인가 받았다. 이후 1952년 2월, 정식 설립 인가를 받았고 그해 12월 4년제 신흥대학(新興大學)으로 전환하였다. 1955년에는 종합대학인 신흥대학교(新興大學校)로 승격되며 교사를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동(現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으로 이전한 후 1960년에 ‘신흥대학교’였던 교명을 ‘경희대학교’로 바꾸었다. 현재 경희대학교는 서울캠퍼스와 국제캠퍼스, 광릉캠퍼스, 홍릉캠퍼스의 4개 이원화 캠퍼스를 운영 중이며, 교내에 '후마니타스 칼리지(Humanitas College)'라는 교양대학을 두고 있다. 서울캠퍼스와 국제캠퍼스는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통합 인가를 받았고, 광릉캠퍼스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국제대학원인 '평화복지대학원'이, 홍릉캠퍼스에는 '파이데이아 홍릉(Paideia Hongneung)'이라는 시민대학(비학위과정)이 소재해 있다. 개요 경희궁(慶熙宮) 교명인 경희대(慶熙大)는 영정조 시대의 치세가 펼쳐진 조선시대의 정궁 경희궁(慶熙宮)에서 따온 것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폐허를 딛고 문예를 부흥시킨 조선 후기 영정조 시대처럼, 한국 전쟁으로 피폐해진 이 땅에 다시 문화적인 르네상스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경희학원(고황재단)의 설립자인 조영식에 의해 명명되었다. 이전의 교명은 '신흥대(新興大)'로 전신인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로부터 이어졌다. 조영식은 서울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는데 당시 서울고등학교 교사가 경희궁 안에 있었다. 1960년대에 조영식은 '흥성(興盛)에 기뻐하다(慶)'는 뜻의 '경희(慶熙)'라는 어휘가 기존의 대학명인 '신흥(新興)'과도 그 뜻이 일맥상통하고, 이름이 세련되고 아카데믹한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해, 당시 상회나 식당 이름 등으로 흔하게 쓰이던 '신흥(新興)'이란 교명을 '경희(慶熙)'로 바꾸었다. 하지만 전신 신흥무관학교의 역사와 정통성, 정신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경희대학교는 교시 '문화세계의 창조'를 통하여 '홍익인간의 이념을 구현'하는 것을 건학이념으로 삼고 있으며, 교훈은 '학원의 민주화, 사상의 민주화, 생활의 민주화'이다. 교표는 1951년에 제정한 것으로, 유엔 정신을 상징하는 올리브 나무가 세계지도를 둘러싸고 있는 도안 위에 신흥무관학교와 신흥초급대학의 교표인 '대학'(大學)이라는 문자를 올려놓은 것이다. 교화는 목련으로, 창립 20주년을 기념하여 1970년 5월에 지정한 것이다. 이는 흰 목련이 순결, 무구, 정직을 상징하는 것 등에 뜻을 둔 것이다. 상징동물은 사자로, 경희대의 '웃는 사자'는 강인한 생명력과 관대한 내면세계, 치열한 자기 극복과 타인에 대한 너그러운 보살핌의 자세를 동시에 지닌 인간상을 뜻한다. 교가 이외에도 학교에서 자주 사용되는 가곡 '목련화'는 설립자 조영식이 개교 25주년을 기념하여 쓴 시 '4반세기 칸타타'에서 일부를 가사로 삼아, 작곡가 김동진이 곡을 쓴 것이다.[3] 위치 서울캠퍼스와 국제캠퍼스는 통합 캠퍼스로 이루어져 있다. 각 캠퍼스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서울캠퍼스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경희대로26(회기동) 신흥무관학교를 계승한 '신흥대학교'의 캠퍼스가 있던 자리로 1960년에 '경희대학교'로 교명이 바뀌었다. 서울캠퍼스는 인문, 사회, 자연과학, 순수예술, 의약학 중심의 캠퍼스로, 대표적인 학문분야로는 문과에 법학, 경영학, 경제학, 회계학, 호텔경영학, 사학, 국문학, 영문학 등이, 이과에서는 한의학, 치의학, 의학, 약학, 물리학, 지리학, 정보디스플레이학 등이 있다. 서울캠퍼스는 공원과 같이 조성된 아름다운 캠퍼스와 함께 매년 봄마다 개최되는 벚꽃축제로 유명하며, 본관 및 도서관, 대강당(평화의 전당), 교수회관을 대표로 하는 웅장한 석조전으로도 유명하다. 주요 부속기관으로는 경희의료원과 경희사이버대학교(KHCU)의 스튜디오, 경희대 글로벌미래교육원, 경희대학교 중앙박물관등이 있다. 이웃 대학으로는 캠퍼스를 마주하고 있는 한국외국어대학교를 비롯,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서울시립대학교, 고려대학교, 한양대학교,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홍릉캠퍼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KIST),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이 있다. 회기역, 과 외대앞역을 이용해서 갈 수 있다. 국제캠퍼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덕영대로1732(하갈동) 서울캠퍼스에서 공과대학, 산업대학, 생명과학대학, 체육대학, 외국어계열 등이 이전하여 이원화캠퍼스를 구성하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조성되어 있다. 일부 캠퍼스는 수원시 영통구 영통동과 용인시 기흥구 하갈동, 서천동의 경계에 위치하면서 '국제캠퍼스'로 명명되기 이전에는 '수원캠퍼스'라 명명되었다. 국제캠퍼스는 공학, 응용과학, 생명과학, 전자정보, 실용예술, 국제학, 외국어 중심의 캠퍼스로, 특성 있는 학문분야가 많으며 대표적으로는 유전공학, 생체의공학, 한방재료공학, 스포츠의학, 국제학, 원자력공학, 우주과학, Post Modern 음악학, 골프경영학(체대), 태권도학 등이 있다. 주요 시설로는 수용 인원 8천여명 규모의 노천극장 및 종합체육관, 천문대, 원자로실 등이 있으며, 동서의학대학원과 생명공학원을 중심으로 글로벌 의약품소재개발 연구센터, 피부생명공학센터, 친고령특성화 대학원 등 '의료R&D센터'의 설립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근처 수원시 영통구의 주요 교육기관으로는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아주대학교 등이 자리잡고 있다. 광릉캠퍼스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광릉수목원로195 대한민국 최초의 국제대학원인 '평화복지대학원(The Graduate Institute of Peace Studies)'이 소재하고 있다. 광릉캠퍼스는 광릉수목원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 대학원 본관을 비롯해 도서관, 기숙사(삼정서헌), 명상관, 실내체육관, 교수 아파트, 평화의 탑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평화복지대학원의 교육 과정은 국제무대에서 활동할 인재 양성을 위한 '엘리트 교육'을 표방, 모든 재학생들에게 학비와 교재비, 해외연수비, 기숙사비, 생활비가 전액 제공되고 있으며, 전강의도 영어로 이루어지고 있다. 졸업생들은 국제 연합(UN) 등 주로 국제기구로 진출하고 있다. 경희대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2개의 국제대학원을 동시에 운영 중인데, 또 하나의 '국제대학원(Graduate School of Pan-Pacific International Studies)'은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 안에 '국제대학(학부과정)'과 연계되어 있으며, 평화복지대학원과도 밀접한 교류를 맺고 있다. 홍릉캠퍼스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청량리동 홍릉로91 경희대학교의 교양대학 '후마니타스 칼리지'와 연계된 경희사이버대학교의 대안적 시민대학, 시민대학원(비학위과정)인 '파이데이아 홍릉(Paideia Hongneung)'이 위치해 있다. 파이데이아(Paideia)란 라틴어 후마니타스(Humanitas)의 그리스어 단어로 둘 다 인문학, 인문교육을 의미한다. 홍릉캠퍼스는 서울캠퍼스에서 약 2km 정도 떨어진 홍릉수목원 부근에 지상 5층, 지하 1층(연면적 1356m2)의 교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부에 대형 강의실과 지하 강연장, 전시실, 교수 연구실, 옥상정원, 카페 등으로 구성되어, 경희학원의 재학생들을 비롯해 일반시민, 지역주민,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교양교육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홍릉캠퍼스에는 '미래경영과정' 등의 경영 프로그램 및 시민문화학교 '콜레주 드 홍릉(Collège de Hongneung)'도 개교해 운영될 예정이다. (참고로 경희대와 경희사이버대는 캠퍼스를 공유하고 있다.) 발자취 신흥대학(新興大學)터 중국으로 넘어간 신민회 회원 이회영·이시영(李始榮) 등 6형제가 주축이 되어 1911년 류하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 추가가 대고산(大孤山)에서 경학사를 결성하고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1920년 일제의 탄압으로 학교가 문을 닫았지만, 해방 후 이시영은 1947년 2월 재단법인 성재학원을 설립, 지금의 조계사 뒤편(종로구 수송동 82번지)에 신흥전문학원을 세웠다. 1949년 이전에 해방과 함께 등장한 배영대학관과 신흥전문학원이 대학의 면모를 갖추지 못한데다, 또한 경영난에 처하면서 두 학교는 1949년에 재단법인 성재학원의 설립과 함께 이시영을 중심으로 신흥초급대학(2년제)의 가인가 설립을 통해 상황의 타개를 꾀하였다. 그러나 학교 경영의 어려움과 함께 두 차례의 사기로 인해 학원 경영이 더욱 수렁으로 빠져들자, 1951년 5월 18일에 조영식이 이시영의 간청에 따라 1,500만 원의 부채를 모두 상환하는 것과 함께 재단법인 성재학원을 인수하기로 하였다. 이 5월 18일은 현재 경희대학교의 개교기념일이자, 이후 경희대학교가 발전의 길로 나아가는 반환점이 되었다. 신흥초급대학을 인수한 조영식은 1952년 2월 3일, 영어과·중국어과·법정과·체육과의 4과를 갖춘 신흥초급대학으로 정식 설립인가를 받고, 같은 해 12월 9일에는 4년제의 신흥대학으로 승격했다. 이어 1954년의 대학원 설치 인가와 함께, 1955년에는 설립 이후의 숙원이었던 신흥대학교(4년제 종합대학)의 설립인가를 받으면서 현재와 같은 종합대학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를 즈음하여 현재의 동대문구 회기동 고황산(高凰山=天藏山) 일대에 새 터전을 마련한 경희대학교는, 1955년에 ‘문화세계의 창조’라는 글을 새긴 교시탑을 준공하는 한편 1956년에는 현재 본관으로 사용되는 석조 본관을 준공했다. 석조 본관의 설계를 맡았던 조영식은 이후 1968년의 중앙도서관의 준공까지 설계를 담당하였으며, 이후 경희대학교의 여러 주요 건물은 유럽 여러 나라의 건축 양식을 이용해 조영식이 설계한 것이 더러 있다. 1960년에 법인의 명칭을 재단법인 고황재단으로 바꾸는 것과 함께 대학의 이름으로는 딱히 좋은 편이 아니던 신흥이라는 이름을 경희대학교로 바꾸었다. 1963년에 경희초급대학(2년제)의 설립과 함께, 1965년에는 학교법인 행림학원과 동양의과대학을 합병하였고, 이어 1966년에는 경희간호대학을 설립하였다. 다음 해(1967년)에는 경희초급대학을 경희여자초급대학으로 개편하였다. 1971년에는 현재의 부지에 경희의료원을 개원하였으며, 1975년에는 경희호텔경영전문학교를 설립하였다. 이 해에는 석조 본관 전면의 공사를 마치는 것과 함께 석조본관이 완공된 해이기도 했다. 1978년에는 경희여자초급대학이 문을 닫았으며, 1979년에는 경희간호전문학교가 경희간호전문대학으로 승격하였다. 1978년에 자연사박물관이 개관하였다. 이어 1979년에는 경기도 수원 일대(현재 용인시 기흥구 서천동 일대)에 수원캠퍼스를 설립하는 것을 인가받아 공과대학 등이 서울캠퍼스에서 이전하였으며, 1984년에는 경기도 남양주시에 평화복지대학원의 개교와 함께 광릉캠퍼스를 설치하였다. 1998년에는 경희호텔경영전문대학을 폐지하고, 이를 흡수하여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학으로 하였으며 1999년에는 경희간호전문대학을 폐지하여 의과대학 간호학과와 함께 간호과학대학으로 하였다. 1995년에 수원캠퍼스 중앙도서관을 준공하였다. 1999년에는 1976년에 착공하였으나 정부의 반대로 인하여 완공을 못하고 있던, 평화의 전당이 정식으로 완공되었다. 동양 최대 규모의 종합 문화 예술 공연장으로 설계된 평화의 전당은, 조영식이 중세 고딕 양식으로 설계하였으며 경희 50년의 역사를 스테인드 글라스와 화강암 조각으로 담아내고 있다. 2011년에는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와 국제캠퍼스가 단일 학교로 통합되었다. 2011년 7월 11일에는 교육과학기술부에 본, 분교 통합 신청서를 제출하였으며, 이후 8월 24일에 교과부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아 본, 분교 통합이 확정되었다.[4] 2013년에는 GSC 봉사단, KOICA 국제개발 협력사업(캄보디아) 착수하였고, 2013년 2월에 공동 입학식 개최(신입생 캠퍼스 행진 처음 도입)를 하였다. 2013년 8월 BK21 플러스 ‘창의인재 양성사업’ 20개 선정되었고 2013년 9월에 캠퍼스 전역 대상 무선랜(KHU Wi-Fi) 시스템 구축을 하였다. 2013년 11월에 초소형 인공위성 ‘시네마 2·3기’ 발사로 프로젝트 성공하였다.